생각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의미를 묻다

죽는다는 것이 끝이라는 걸 알고 나서도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삶도 죽음도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삶을 영위할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어떤 것을 경험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죽음을, 또는 그 죽음의 순간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전할 수가 없으니까. 우리 인간은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전할 수밖에 없는데, 죽고 나면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초등학교 때, 내가 10살때였다. "죽음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라고 제목이 붙은 리더스다이제스트(sean.kr/s.php?k=OQqCaH)에서 출간한 단행본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 그대로 죽음에 임박한 순간을 지혜와 기지, 그리고 의지로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나 역시 살면서 다섯 번이나 죽음의 순간을 경험했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을 경험했다는 것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죽음의 순간은, 죽음이라는 결과가 정해져 있어 피할 수 없을 때와 죽음의 순간이 지나고 다시 살아갈 때, 두 가지의 경험으로 나뉜다. 죽음의 순간이 임박했을 때, 그 결과가 죽음으로 정해져 있는 그 순간에는 진짜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지 않고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면, 그것은 아주 아주 위험한 순간을 경험했던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죽음의 경험이 아니다. 나는 죽음을 경험한 것이 아니고 죽음에 이를 뻔한 사건을 경험한 것일 뿐인 것이다. 오히려 삶의 한 순간을 경험한 것이라고 말해야한다. 물론 그런 경험도 매우 소중하다. 그런 순간에, 그리고 혹은 그런 순간을 경험하고서도 삶을 계속 영위한다는 것은 보통의 의지로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번도 힘든데 다섯 번이나 그런 경험을 했으니, 게다가 그렇게 많은 죽음의 순간, 그런 위험한 순간을 경험한 후에도 계속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나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고, 수정된 가치관을 기존에 갖고 있었던 가치관과 병합해야 하는 것은 보통의 의지로는 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하지만 아직 나는 살아 있다. 그리고 지금 와서 보면 그 모든 어려운 순간들, 힘들었던 순간들, 인생의 고초들, 죽음의 순간들, 그런 것들이 모두 다 인간의 기준에서만 힘들고 어려울 뿐이고, 그 너머를 봤을 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궁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삶을 이어나갈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삶의의미 #죽음 #인생 #가치관 #경험 #고찰 #철학 #인문학 #생각 #일상 "죽음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 초판 - 1980년 책표지 └한국의 동아출판사에서 출판한 책표지 - 1985년 초판 (구매링크 : sean.kr/s.php?k=s3U02p) └리더스다이제스트 출판 1980년 표지 (구매링크 : sean.kr/s.php?k=kyxc4a) └리더스다이제스트 출판 1997년 표지 (구매링크 : sean.kr/s.php?k=kkm4ka) 리더스다이제스트에 연재되었던 "Drama in Real Life: Moments of Terror and Triumph that Changed People's Lives" 를 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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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 속에 피어나는 현실, 상상의 마법

[Town to City] 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 출처 : sean.kr/s.php?k=MI5RgC 이 게임을 소개하는 기사(sean.kr/s.php?k=VSgyoR)를 읽으니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작성중인 포스팅시리즈 중에 (컴퓨터와 나 - 2) 가 있다. 어린시절 나는 컴퓨터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화면에 푹 빠졌었다. 그런데 지금 그때 당시 게임들의 그래픽을 보면 너무나 엉성하다. 그런데도 그떄는 왜 그렇게 현실보다 더 뛰어나게 보였을까? 우리는 세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뇌에서 해석한 것을 인지한다. 보여지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우리는 3차원 세상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3차원을 감지할뿐, 진정한 3차원 세상을 보지는 못한다.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의 신호를 2차원 막으로 감지하고, 그렇게 들어온 신호를 3차원으로 재구성하여 인지하는 것이 우리가 3차원을 본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방식이다. 이 중대한 괴리로 인해서, 진짜보다 더 진짜같다는 착각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다. 아무리 현실과 구분이 안될 정도의 뛰어난 컴퓨터그래픽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실체가 없다. 엉성한 그래픽이든, 현실과 구분이 안될정도로 뛰어난 그래픽이든, 가짜라는 것은 똑같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다. 그것을 보고 우리가 상상하는것, 우리가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인크래프트(sean.kr/s.php?k=niajBY) 게임을 즐기는 방식을 보면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마인크래프트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화려한 그래픽, 진짜같은 화면이나 기능에 매료된 것이 아니다. 엉성해보이는 복셀그래픽이에 플레이어의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게임 #TownToCity #마인크래프트 #복셀그래픽 #상상력 #뇌과학 #인지과학 #컴퓨터그래픽 #추억의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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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강, 삶의 노래

죽음의 순간은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일생에서 모든 가능성은 전부 열려 있지만, 단 하나 닫혀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완전히 예정된 결과이다. 심지어 이 우주 전체도 결국은 끝이 있다. 적어도 현재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그렇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당연하게도 인간의 삶도 그렇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죽음의 순간은 인간의 의지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순간에 임박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은 죽거나 다시 살아나가거나, 이 두 가지 뿐이다. 두 가지 경우의 수 중에 하나를 경험할 뿐이다. ---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있습니까? 이 난제에는 해답이 없습니다. 문제가 아니기에 해답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 그러니 제발 부탁입니다. 어디가서 뛰어내리지 마세요. 어디에 있던지간에, 그자리에서 당당하세요. --- 6년전에 내가 쓴 글이다. 나는 무슨 근거로 저런 말을 했을까? 나는 저 말을 했었던 6년전, 이미 삶도 죽음도 특별한 의미가 없고, 우주에 떠다니는 소행성과 나, 둘의 차이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6년전의 나는 삶을 노래했고, 지금의 나는 죽음을 노래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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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함께 하는 세상, 인간이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블로그서비스의 사용자가 설정메뉴에서 파비콘을 직접 등록하여 변경할 수 있는 기능을 업데이트 하기위해 구글안티그래비티와 제가 나눈 대화의 내용입니다. 굳이 이 내용을 포스팅하는 이유는, 비개발자가 AI에이전트와 함께 작업을 진행할때 유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 : 파비콘을 설정메뉴에서 사용자가 등록할 수 있도록 해줘. 파비콘 이미지파일을 업로드할때, 업로드할 파일의 사이즈와 파일형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안내하는 문구도 상세하게 추가해. 덧붙여 파비콘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적어둬. 개발규칙을 준수하여, 계획을 보여줘. 수정을 먼저하지 말고, 우선 보고부터 해야해. AI : [파비콘 설정 기능 추가 계획 보고] 요청하신 파비콘 업로드 및 설정 기능을 추가하기 위한 계획입니다. 관리자 설정 페이지 (admin/settings.php) 업로드 기능: 파비콘 이미지 파일(.ico, .png 등)을 업로드할 수 있는 섹션을 추가합니다. 안내 문구: 파비콘에 대한 설명과 권장 사이즈(32x32px 등), 형식 정보를 상세히 기재합니다. 미리보기: 현재 설정된 파비콘을 미리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전체 사이트 적용 (Frontend) 현재 코드에 하드코딩된 파비콘 링크(logo_17.png)를, 설정된 파비콘 주소를 불러오도록 변경합니다. 모든 페이지(홈, 관리자 등)에서 사용자가 등록한 파비콘이 즉시 적용됩니다. 이 계획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승인 시 즉시 구현) └ 이 답변을 보시면, AI는 저에게 사용자가 업로드한 파일을 어디에 저장할지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엉뚱한 곳에 저장하면, 업데이트 패키지를 제공할때 매우 곤란해지게 됩니다. 나 : 사용자가 업로드한 파비콘 파일은 어느 폴더에 저장할거야? AI : [파비콘 저장 위치 안내] 사용자가 업로드한 파비콘 파일은 다음 경로에 저장할 계획입니다: 📂 저장 경로: .../data/img/favicon_custom.png (또는 .ico) 이유: data 폴더는 사용자의 데이터를 보관하는 곳이므로, 시스템 파일과 분리되어 백업 및 관리가 용이합니다. 웹에서 접근 가능한 위치(www)이므로 브라우저가 아이콘을 쉽게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 경로에 저장하고 설정을 진행하시겠습니까? └ 제가 명확히 질문을 하니, 그제서야 '난 이미 그렇게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라는 말투로 말합니다. 하지만 AI가 간과한 문제가 또 있습니다. 이대로 진행하도록 허락하면, 파비콘 파일명이 고정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사용자가 파비콘을 바꿨을때 문제가 생깁니다. 나 : 사용자가 파비콘을 변경하면 어떻게 할거야? AI : [파비콘 변경 시 동작 방식] 사용자가 파비콘을 변경하면 다음과 같이 처리됩니다: 자동 교체: 기존에 업로드된 커스텀 파비콘 파일은 삭제되고, 새로운 파일로 교체됩니다. (서버 용량 낭비 방지) 즉시 반영 (캐시 방지): 브라우저가 예전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어 변경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문제를 막기 위해, 파일 주소 뒤에 버전 정보를 붙입니다. (예: favicon_custom.png?v=20240218...) 이로 인해 사용자는 업로드 즉시 변경된 파비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으로 구현을 시작해도 될까요? └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제시를 하니, 이제야 완전히 올바른 계획을 수립합니다.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되는지 이미 AI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콕 집어서 질문하고 명령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갑니다. 당장에 잘 구동되는 결과만 보여줍니다. 나 : 개발규칙을 준수하여 진행해. 보시다시피, AI는 정확하고 세심하게 질문하고 명령해야 제대로 작동합니다. 그게 귀찮아져서 권한을 많이 주게 되면 제가 얼마전 겪은 일과 같은 경험을 하시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구글안티그래비티가 제 하드디스크 데이터를 몽땅 삭제했습니다.) 수정을 거듭할 수록 전체 프로젝트가 엉망이 되어갑니다. 이것은 AI의 잘못이 아닙니다. 수십조달러가 투입되어 개발되고 있는 AI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가성비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실수처럼 보이는 오류가 너무 잦다는 것입니다. 기계가 실수를 할까요? 아니지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너무 비대해져서, 어떻게 작업해야하는지 세상 모든 인간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잘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잘 하는 일을, AI가 비슷하게 해낸다고 찬사를 보내는 것이, 저만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입니까? 위의 대화에서 AI는, 코딩에 대한 전세계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있는 5살짜리 꼬마아이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제가 잘못 보고 있는걸까요? 그러니 이런 AI를 사용할때는 AI가 멍청하다고 탓할게 아니라, 면밀하게 규칙을 알려주고 지속적으로 그 규칙을 잘 지키게끔 해야합니다. 저는 하드디스크 데이터를 몽땅 잃어버린 후, AI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주도권을 빼앗기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효율과 안전을 위해 AI에이전트에게 규칙을 작성하여 알려주었습니다.(게시글 : andrej-karpathy-skills 를 AI에이전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규칙을 잘 지정해줬다고 해서 AI가 100% 완벽하게 작업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상 세심하게 질문하고, 모든 작업에서 제 의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주도권을 잃는 순간, 제가 경험한 것과 같은 큰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AI를 개발하고, AI와 함께 많은 작업을 하는 이유는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AI를 도구로 사용해야지, 인간이 AI의 도구가 되면 안됩니다. 지금 주변을 돌아보면, AI로 만든 것에 열광하며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런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내가 혹시 저런 상태가 아닌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예전에는 어땠지?',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고 있지?' 하고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성찰한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되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여러분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파비콘 #AI협업 #개발팁 #인공지능 #AI주의사항 #개발규칙 #데이터관리 #자동화 #기술윤리 #AI활용 #웹개발 #프로그래밍 #IT기술 #기술블로그 #질문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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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나 - 2

이전 게시글에 이어서 작성합니다. (컴퓨터와 나 - 1) 출처 : sean.kr/s.php?k=zLkx5y 그때 친구와 모든 노력과 시간을 거의 다 바치며 열정을 쏟아부었던 게임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어둠속에 나홀로.(sean.kr/s.php?k=Flu767) 나는 친구와 함께 이 게임을 거의 내 인생 전부인것처럼 온갖 시도 끝에 실행시키고 플레이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3d 게임이었어요. 지금에와서야 보면 말도안되게 엉성하게 보일지 몰라도, 당시에는 그런게 컴퓨터로 가능하다는것 자체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3차원 캐릭터라니! 세상에!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차원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3차원 캐릭터를 PC 입력장치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어요. 다시 말해보자면, 그때가 1993년이었는데, 그때 당시 사람들이 차원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요즘에야 넘쳐나는 정보들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여러 차원에 대한 상식이 전반적으로 인지되어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 적어도 한국에서는 - 인생에 큰 굴곡없이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새롭고 일반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주아주 좋은 성과를 가져오거나 쓸데없는 것이거나, 둘 중에 하나였어요. 하지만, 3차원이라니! 세상에... 모니터 하나를 두고 미친듯이, 뚫어져서 거기에 들어갈 것만 같이 친구와 저는 그 게임에 열중했습니다. 출처 : sean.kr/s.php?k=XIVTHy 그리고 심시티. 아.. 심시티2000...(sean.kr/s.php?k=vcVpP5) 어떻게 이런 게임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이게 그때 당시 저의 감상이었어요. 한 도시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다니.. 제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게임을 친구와 함께 플레이했던 것이 1993년이었습니다. 한글도 아니었고, 게임을 실행시키는 것 자체도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 친구가 부잣집 아들이 아니었다면, 그 게임을 실행시킬 수 있는 컴퓨터를 제가 경험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마치 친구와 제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는데 알아서 컴퓨터를 척척 공부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가지 일화가 있어요. 친구집에 컴퓨터가 설치된 후 얼마되지 않았을때였습니다. 어느날 컴퓨터를 켜놓고, 친구의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과일과 음료수를 먹은 후 다시 가보니 컴퓨터 화면에 이상한 점들이 중앙에서 바깥으로 흩어지는 화면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게 어떤 것을 표현한 것인지 알지만, 그때의 친구와 저는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키보드를 이것저것 눌러봐도 화면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30분넘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고민을 거듭하다가, ESC 키를 눌렀더니 MS-DOS 창이 표시되었습니다. 이게 무엇이었을까요? 네. 화면보호기였습니다. 우리는 그정도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화면보호기로 표시되던 광경은 광속으로 우주를 여행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었어요.) 그때 당시 컴퓨터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게임말고도 여러가지를 시도했습니다. 이것저것 코드들을 작성해서 이상한 결과물들이 컴퓨터에 표현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완성된 것, 잘 만들어진 것, 그런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매번 컴퓨터를 켜고 무언가를 할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대단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추억의게임 #90년대게임 #고전게임 #컴퓨터이야기 #심시티2000 #3D게임 #MSDOS #화면보호기 #어린시절추억 #컴퓨터와나 #어둠속에나홀로 #심시티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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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나 - 1

오전 12시 57분, 여러가지 많은 수정을 하고 이제 마무리하려한다. 어제는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만든 웹사이트를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패키지 형태로 배포했다. 오늘은 업데이트 패치도 해보았다. 모두 정상작동하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하다. AI 에이전트가 없었다면, 몇 년은 공부해야 할 수 있을 일들을 단 몇 일만에 할 수 있었다. 2022년에 챗gpt를 처음 만나고, 스테이블디퓨전을 pc에 설치해서 로컬ai로 이미지를 만들고, 퍼플렉서티와 챗gpt로 간단한 슈팅게임이며, 뮤직플레이어, 자격증생성기, 웹기반 3d슈팅게임들을 만들어서 테스트해본게 바로 어제처럼 느껴진다. 내가 생각한 것을,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이 경험은, 초등학교 4학년, 그러니까 내가 10살때 컴퓨터로 작성한 계산내역을 도트프린터로 출력하면서 경험했던 전율에 가까운 희열을 선사한다.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운좋게도, 진정으로 나는 운이 좋게도 아주 일찍 컴퓨터를 경험했다. 그때 한국에서는 부잣집, 그냥 부자도 아니고 상류층 정도는 되어야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다. 컴퓨터 한 대 가격이 자동차보다 비쌌고, 지방도시 전세값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때 나는 10살이었고, 대한민국의 거제도에서 학교를 다녔다. 거제도는 한국에서도 아주아주아주 시골이며 심지어 섬이다. 그런 촌구석에, 전교생이 50명 조금 넘는 학교에서, 나의 선생님은 무려 4곳의 마을을 몇 달간 돌아다녀 부모님들을 설득해 돈을 모아 컴퓨터를 한 대도 아니고 5대나 샀다. 그리고 그것을 학교에 설치하셨다. 4대는 교실 뒷 편에, 1대는 작은 빈 교실에 설치하셨다. 선생님은 우선 학생들이 자유롭게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하셨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선생님도 컴퓨터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 모르셨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타자게임, 슈팅게임, 워드작성기 외에는, 그 비싼 컴퓨터로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었다. 학생들은 몇 일간 열심히 슈팅게임에 열광했다. 내 차례가 돌아오면 나는 타자게임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상하게 봤지만, 나는 그게 더 재미있었다. 왜냐하면, 타자게임을 하면 워드작성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내가 키보드에 입력한 것이, 화면에 또박또박한 글자로 표시되는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그마저도 슬슬 재미없어져서 그 뒤로는 뭔지도 모르는 입력창에 이것저것 눌러보았다.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다른 친구 한 명을 지정해서 컴퓨터를 가르쳐주셨다. 그 친구는 전교에서(50여명 중에서) 나와 1등과 2등을 다투던 친구였다. 수업이 끝나면 그 친구와 나는 선생님께 컴퓨터라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선생님도 더듬더듬 배우면서 가르치시느라, 우리 세 명은 진도가 참 더뎠다. 처음으로 8자리 숫자의 계산기를 실행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선생님이 거금을 들여 사오신 로터스 123을 실행시키고, 심지어는 시트에 입력된 내용을 도트프린터로 출력하며 함께 환호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정도까지 이르는데 거의 1년이 넘게 걸렸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나는 도시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나의 컴퓨터 공부는 끊어졌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친구가 별로 없는 같은 반 부잣집 학생과 친해지게 되어 나는 다시 컴퓨터를 접하게 되었다. 그 친구 집을 내 집에 드나들듯이 하면서, 나와 친구는 컴퓨터에 열중했다. 거의 게임들이었는데, 어리석어보이지만 그것도 모두 내게 소중한 경험이자 배움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는 게임하나 실행시키는 것도 꽤나 고생해서 이것저것 공부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합니다. 컴퓨터와 나 - 2 #웹개발 #AI활용 #개발일지 #개발자 #인공지능 #자동화 #IT기술 #코딩 #프로그래밍 #생성형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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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컴퓨터는 1차원 존재입니다.

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서 해 볼까요? 지난번 게시글(행복, 닿을 수 없는 차원의 빛)에서 저는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차원, 그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저의 생각을 기록했습니다. 제가 볼 때 컴퓨터는 완벽한 1차원 존재입니다. 우리는 3차원 세상에 살고 있고, 우리가 완전히 통제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2차원이며, 그렇기 때문에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1차원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컴퓨터라는 존재를 창조해 냈고 현재까지는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이유는, 컴퓨터가 1차원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컴퓨터가 완전히 1차원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의문을 품으시는 분이 있겠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듣자마자 바로 이해하시는 분이 있다면, 저와 생각이 비슷한 분이겠지요. 컴퓨터는 아무리 복잡해 보일지라도 결국 0과 1이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0001110110011000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런 것들이 우리가 보고 이해하기 편한 형태로 모니터 화면에 뿌려질 뿐입니다. 처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을 때 전구가 켜졌다 꺼졌다 하는 그 두 가지 경우로 계산을 수행하는 방식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옛날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수백만년전부터 우리는, 매일 해가 떴다가 지는 것을 경험해왔지요. 현재는 양자 컴퓨터가 개발되고 있는데, 제가 가진 직관으로 볼 때 양자 컴퓨터는 완전히 2차원적인 존재입니다. 기존에 우리가 해 왔던 방식인 1차원 존재인 컴퓨터와는 다르게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된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꽤 위험한 시도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3차원 존재이고 아직 4차원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2차원 존재를 다루려고 한다는 것은 우리가 통제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니까요. 양자컴퓨터는 전자가 원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 그리고 관찰할때만 특정위치를 유지한다는 것, 이 두가지의 간단한 규칙을 활용한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구형의 표면에서, 전자의 특정위치를 활용하는 방식이므로, 현재의 컴퓨터가 단 두가지를 사용해서 계산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구형의 표면을 펼치면 2차원입니다. 그래서 양자컴퓨터는 2차원 존재인것이지요. 더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가능한 간단하게 제가 이해한 것을 써보자면 이렇습니다. 이런 식으로 저는 컴퓨터와 차원을 연관지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1차원 존재, 이것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덧붙이자면 우리가 글을 쓸 때 한 장의 종이에 한 줄씩 한 줄씩 적어서 내려갑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길다란 한 줄입니다. 보기 편하게 한 장에 2차원 평면으로 나타내 보이고 이것이 책으로 엮여져서 3차원처럼 보이고, 또 이것이 더 나아가서 영상이나 영화, 드라마 이런 것으로 재생산되면서 우리가 보기엔 마치 3차원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의 줄, 1차원인 것이죠. 종이에 써내려 간 글자들도 마찬가지예요. 그 세상의 모든 언어들은, 그것이 우리 눈에 어떻게 보여지든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인지해보면 결국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들이 이어지고 끊기고 다시 이어지고 끊기고 그 모양이 바뀌어서 종이 위에 표시된 것입니다. 이런 제 생각에 대해서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가요?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 있거나 다른 생각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차원 #생각 #컴퓨터 #양자컴퓨터 #일상 #소통 #공감 #IT기술 #기술철학 #의견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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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닿을 수 없는 차원의 빛

저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비결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The happy man is the man who lives objectively, who has free affections and wide interests, who secures his happiness through these interests and affections and through the fact that they are, in turn, made him a subject of interest and affection to many others." "The secret of happiness is this: let your interests be as wide as possible, and let your reactions to the things and persons that interest you be as far as possible friendly rather than hostile." -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The Conquest of Happiness, 1930)』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교수님께서는 이 문장을, "인간과 인간 아닌 것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곧 행복의 비결"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책을 읽은 것은 30년이 더 되었고, 교수님의 아주 좋은 설명을 들은 것이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그 의미를 곱씹어 보고 있어요. 여느 철학자 분들의 말씀을 들었을 때 늘 그렇듯, 좋은 말씀을 듣고 나서 결국 그것이 저의 가치관 중에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을 저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생각한 행복은, 수치화할 수 없고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지요. 아직까지 제가 정리하지 못한 것은,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정해 놓고 의미를 부여하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과연 행복이란 것이 그럴 수 있는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수치화 할 수 없는 것에 인간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실재적이지 못한 것에, 인간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물론 가능한 사례가 많겠지만, 행복이라는 것이 확실히 그러한가? 이 생각은 아직도 저는 납득할만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의 다른 가치관 중에 하나로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에 대입해 보면 행복도 결국은 사랑이니, 사실 행복이란 무엇이고 행복의 정의가 무엇이며 그런 것들이 정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은 이미 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이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행복이 수치화할 수 없고 도달 가능한 목표로 삼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차원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우주에서 행복은 왜 수치화할 수 없을까요? 인간의 감정들 전반을 수치화하는 기술을 확보한 상태인데 말이지요. 물론 그런 일반적인 감정들이 개개인마다 경험하는 경험치가 달라서 상대적인 것이고 수치화시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행복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행복도 감정의 일부이지만, 그렇다 해도 행복이라는 감정은 다른 일반적인 감정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상위의 카테고리 같은 것이 아닐까요? 긴 이야기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행복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3차원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수치화할 수 없고 목표로 삼을 수 없으며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보다 상위 차원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행복도 그 어딘가에 있겠죠. 우리는 우리보다 높은 차원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혹은 추구해서 그 차원에서 전해지는 빛이 반사된 것, 또는 우리 세계에 투영된 것을 감지할 수는 있지만 그 상태로 이동해서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행복은 아주 순간적이고 개인적이며 도달할 수는 없지만 순간순간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말씀드린 이 차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 이어서 컴퓨터와 차원에 대한 이야기에서 좀 더 풀어 보겠습니다./ #행복이란 #행복의정의 #삶의의미 #감정 #철학 #버트런드러셀 #인생 #고민 #가치관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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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쓰는 시간, 영원을 잇는 노래

제 블로그 사이트에는 음성으로 글을 쓰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글도 휴대폰을 사용해서 음성을 입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렇게 자동으로 AI가 제 녹음 내용을 분석하고 본문으로 입력하고, 맞춤법을 수정하고, 임의로 자동으로 제목을 지정해서 게시까지 완료합니다. 사실 이 기능은 이 블로그 사이트를 개발하기 전에 만들었던 업무용 사이트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쓰는 업무 일지를 음성으로 간단하게 쓰기 위해 구현해 봤던 것입니다. 그때와 지금을 합치면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구축한 것입니다. 그런 기능을 수고로움을 감수해 가며 굳이 넣어 놓은 이유는, 솔직히 처음에는 간단하게 글을 쓰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매일 업무 일지를, 녹음 기능을 사용해서 작성을 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지금은 우리들이 이렇게 좋은 기술을 사용해서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영상을 만들고, 영상을 보고, 디지털 정보들을 쉽게 공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 한 장 구하기도 어려웠던 시절, 그 옛날 수천 년 전에는 어땠을까요? 심지어는 문자가 없던 시절은 어땠을까요? 우리 인간들은 지구에 발을 붙인 전체 시간 중에 대부분의 세월을 구전으로, 말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어른이 말을 하면 아이들이 듣고 배우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다시 자기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또 그 자손들, 그 자손들, 그 자손들로 이어져 왔던... 녹음으로 쓰기 시작한 이후로 그 옛날 우리의 조상님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첫 번째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을 때, 첫 번째 제자들은 동물들이었다고 하죠. 부처님은 제자가 동물이든 인간이든 상관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언어로 말씀을 전하셨을 것입니다. 그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지금까지 글로 전해지고 있지만, 그게 진짜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후 수많은 제자들이 업데이트하고 자기 생각을 넣고 수정하고, 여러 많은 사람들이 또 고치고 고쳐서 아주 좋은 내용들을 정리해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겠죠. 부처님의 첫 번째 말씀이 궁금하긴 합니다. 이랬든 저랬든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언어로 다른 이에게 자기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너무 발전하다 보니 혼자서 말을 하는 시간, 혼자서 글을 쓰는 시간이 너무 많아진 것 같아요. 심지어는 AI가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시켜 주기까지 하니, 스스로 자신의 피와 근육과 신경을 사용해서 소리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일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자기 목소리로 글을 쓴다는 것, 제가 해 보니 아주 매력적이에요. 조상님들이 했던 것처럼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내 목소리로 전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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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왔습니다.

요즘 저는 이런저런 일들로 인생에서 참 많이 어렵고 힘든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블로그 사이트를 만든 것은 어떻게 보면 부질없고 의미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의욕도, 아무런 에너지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까지 코너에 몰리고 보니 그동안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들이 오히려 떠올랐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이런 블로그를 만드는 거예요. 흔하디 흔한 워드프레스나 네이버 블로그, 구글 블로그나 (요즘도 서비스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 말고, 진짜 정말 내가 만든 블로그. 30년 전 초창기에 웹사이트를 만들던 사람들이 했었던 작업들. 물론 지금의 제 수준으로는 AI가 없으면 이런 블로그 사이트를 코딩해서 만들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이런 좋은 기술이 있어서 진짜 제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정말 나만의 웹사이트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처럼 이렇게 너무 급박하게 세상이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그동안에 갖고 있었던 사고를 뒤엎어서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생각,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끔 신이 나를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기본 브라우저에서 이미 제공하고 있는 번역 기능이 있는데도, 굳이 제 블로그 사이트에서 번역 기능을 제공하도록 제가 만든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제 생각엔 이건 새로운 시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넷 초창기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오히려 새롭고 이상한 경험일 것입니다. 브라우저 자체에서 번역 기능을 제공하지 않았던 수년 전 사이트들에서는 지금 제가 만든 이 블로그 사이트처럼 일일이 번역한 글들을 따로 자바스크립트 데이터로 저장해 놓고 사용자가 선택하면 그걸 불러오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오늘 만든 이 블로그 사이트가 그렇습니다. 그럼 왜 브라우저 번역 기능이 있는데 왜 굳이 그런 옛날에 하던 방식을 다시 불러와서 지금의 제 블로그 사이트에 제가 넣었을까요? 생각보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브라우저 사이트에서 아직까지는 자동으로 모든 번역을 해 주지는 않거든요. 저는 제 블로그 사이트에 들어오시는 방문자분들이 마치 자기 나라 사람이 만든 블로그인 것처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 그런 기능이 충분히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업데이트해서 며칠 내로 그렇게 만들 생각이에요. 그리고 다국어 기능을 제공한 궁극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말 아주 잘하고 한국 책을 많이 읽었어요. 한국에서 교육을 다 받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글로 글을 쓰라고 하면 잘 씁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이 블로그를 보고 계시는 여러 다른 나라 분들께도 소용이 있을까요? 물론 소용이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제가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글들이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 정말 적절하게 그 해당 국가의 문화와 감성에 어울리게끔 완벽하게 번역이 될 가능성은 아주 적습니다. 아무리 번역 기능이 발전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물론 수년 내에는 AI가 잘 번역해 주겠죠. 하지만 제가 볼 때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구글에서 번역 기능을 제공했지만 아직까지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것만 봐도 완벽한 번역 기능은 생각보다 좀 더 먼 미래이거나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완벽한 번역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오히려 제가 생각했을 때 사람들이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에 적응하고 있냐면, AI가 번역한 글들을 자기 나라의 문화와 생각에 맞게 의역해서 듣는 거죠. 여러분들이 지금 이 블로그 사이트의 번역된 글들을 읽을 때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문법 하나하나를 따지기보다는 이 글의 맥락과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들을 받아들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이 적응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이건 정말 좋은 현상인 것 같아요. 국경을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모든 개개인들이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제 생각에 지금 이순간, 현재까지 구현된 기술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분기점입니다. 진정으로 전세계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술이 나타났습니다. 앞으로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나갈지가 여러분과 제가 선택해야할 문제인 것입니다. 앞으로의 글들에서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 방법들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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